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노량진에 있는 단과학원을 다녔다. 수능을 열 달 앞두고 수포자를 탈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가득했다. 그날도 ‘왕수학’ 왕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조그맣고 까만 아기들이 꼬물거리며 한 데 뭉쳐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언덕 밑에는 주황색 간판에 ‘애견방’ 이라고 쓰여있는 샵이 있었다. 동네 강아지들 미용도 하고, 샴푸와 간식도 파는 조그만 가게였다. 그곳에 아기 강아지들이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유리창 앞에 딱 붙어 홀린 듯이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까만데 눈썹과 수염은 하얗고. 분명히 주먹만한 아기인데 할아버지처럼 생긴 게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도록 귀여웠다. 아기 슈나우저는 정말 미치도록 귀엽다. 다섯 마리 아기 슈나우저들이 창문 밖 내 손가락을 따라다니며 아장아장 돌아다니는데 너무 추운데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나 보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그 짓을 매일 학원에 다녀오는 길마다 반복했다. 독서실에서도, 왕수학 강의실안에서도 강아지들이 눈에 아른아른거렸다. 일주일 쯤 됐을까? 어둑어둑해지던 오후 엄마와 함께 마트에 다녀오던 길에 유리창 앞으로 엄마 손을 잡아끌고 갔다. 엄마 나 맨날 얘네 땜에 집에 못 가겠어.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도 눈이 커졌다.
집에 돌아와서 나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강아지를 데려오자고 졸랐다. 엄마는 의외로 수월하게 한 문장에 설득되었다. 강아지 키우게 해 주면 나 수학 1등급 만들게.
그렇게 아기 슈나우저님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언덕을 올라오던 날 눈이 왔다. 손바닥만한 강아지가 감기에 걸릴까 봐 엄마는 패딩 안에 강아지를 쏙 넣어서 집까지 올라왔다. 엄마는 아빠가 산을 좋아하니 강아지를 산이라 부르자 했다. 다음날 학원에 다녀오니 산이의 이름은 산타로 바뀌어 있었다. 산이야 산이야 불러도 별 반응이 없어서 좀 더 센 발음인 산타야 해봤더니 알아듣는단다. 산타는 곧 할아버지니, 본투비 할아버지 얼굴인 이 강아지랑도 어울리는 것 같았다. 간식을 사러 산타를 데려온 샵에 갔다가 산타의생일이 12월 24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후의 일이었다.
그해 수능에서 나는 수학 1등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 약속 따윈 필요 없어졌을 정도로 우리 가족은 산타를 사랑했다. 손바닥만하던 아기강아지는 팔뚝만해졌다가, 10kg의 말썽꾸러기로 자랐다. 산책을 나가면 내가 산타의 힘에 끌려다녔다. 화장실에 똥만 눠도 칭찬받아서 잘났다고 겅중겅중 뛰었다. 가끔 외출한 사이 쓰레기통을 뒤집어놓기도 했지만, 화장대 밑에 숨은 산타의 시무룩한 눈빛만봐도 마음이 풀렸기에 오래 야단치진 못했다. 산타는 엄마아빠에겐 아들이, 내겐 하나뿐인 동생이 됐다.
엄마는 산타가 침대 위에 올라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에 엄마가 코고는 소리가 나면 그제서야 내 방으로 산타가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산타는 내가 일부러 조금 열어둔 방문을 코로 열고 풀썩 침대로 올라와서 내 팔베개 안으로 쏙 들어왔다. 산타 코에 내 코를 맞대고, 산타가 숨을 내쉴 때 내가 숨을 들이쉬면 산타의 숨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냄새가 따뜻하고 고소하고 예쁘고 귀여워서 그렇게 누워있다 잠들곤 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이 예쁘다 말하며 정성껏 산타의 이마를 쓰다듬으면, 산타는 길고 깊은 숨을 쉬며 내 얼굴을 핥아주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다가, 대학생이었다가, 취업준비생이었다가, 직장인이 되는 사이 산타는 아기였다가, 어린이였다가, 청년이었다가, 아저씨였다가, 할아버지가 되었다. 산타는 점점 얌전해지고 활동성이 떨어졌다. 나는 산타가 아플까 봐 예민해지고 안달이 났다. 그래서 월급을 털어 매달 산타에게 비싼 영양제들을 사다 바치고 각종 동물병원에 건강검진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힘이 없어진 노인처럼, 산타는 점점 혼자 있길 원했고 적극적인 관심을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직 청년인데, 산타는 진짜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다. 우리 둘이 같은 속도로 늙었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청년인 나의 에너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산타는 나랑 신나게 놀다가도 종종 구석에 혼자 들어가 웅크리고 있곤 했다. 엄마가 얘기했다. 산타 이제 할아버지야, 이제 그렇게 같이 소리치고 뛰어놀기 힘들어. 할아버지로 대우해줘야 해.
왜 같은 속도로 나이들 수 없을까? 산타는 마지막 산책을 나와 단둘이 함께했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도중비가 왔고 산타가 떨며 추워해서 한 시간만에 돌아왔다.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 밑에서 처음으로 산타가 못 올라가겠다고 주저앉아서 내가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이가 들어서 다리가 아픈가보다 생각했다. 며칠 후 산타는 밥을 먹지 못했고, 데려간 동물병원에선 급히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덕에 함께할 시간을 2개월 정도 더 연장할 수는 있었지만, 산타를 붙잡지는 못했다.
내가 출장을 간 사이 산타는 멀리 여행을 떠났다.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함께 살던 사랑하는 가족을 처음으로 잃었다. 산타는 가끔 내 꿈에 나와주었다. 깊고 어두운 터널 밑으로 산타가 태운 차가 사라져버리고 그 앞에서 나는 두려움에 따라가지 못한 채 멈춰버리는 꿈, 산타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더 예쁨 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꿈, 다시 아기가 된 산타가 생일파티를 하는 꿈들을 꾸었다. 마지막 인사를 못해서 마음에 걸렸는지, 꿈 속에서 산타는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나의 가장 어리고 빛나는 날들을 함께하고 그새 혼자 늙어버린 산타. 산타를 다시 만난다면 내 욕심대로 산타를 사랑하지 않고 그저 산타가 가장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만 싶다.